제3장

정령은은 제로 바를 나섰다.

억지로 버티던 의지가 그 순간 완전히 무너져 내렸고, 심장은 갈기갈기 찢겨 너덜너덜해졌다.

밤은 깊어지고, 저녁 바람이 스쳐 지나가자 여인의 온몸은 외로움에 휩싸였다.

그녀는 자조적으로 입꼬리를 올렸다. 스스로를 슬퍼하고 원망할 틈도 없이, 등 뒤에서 하이힐이 바닥에 부딪히는 또렷한 소리가 들려왔다.

“정 선생님! 같이 가요, 너무 빨리 가지 마세요!”

여자의 목소리에는 원망과 거친 숨소리가 뒤섞여 있었다.

정령은은 그 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차소아가 마침내 그녀를 따라잡았다. 그녀는 허리를 반쯤 숙인 채 숨을 헐떡이다가, 숨이 좀 가라앉은 후에야 몸을 바로 세웠다.

차소아의 두 눈은 펑펑 운 것이 분명할 정도로 새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진실을 아는 정령은의 눈에는 한 점의 미동도 일지 않았다. 어차피 그 쓰레기 남자의 운세를 봐주었을 때, 그녀는 이미 이 관계가 상대의 바람으로 끝날 것임을 알고 있었다.

“정 선생님, 그 사람이 바람피운 거 혹시 이미 알고 계셨어요?”

말을 하다 말고 차소아의 눈에는 또다시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앳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화장은 오히려 어색해 보였다.

하이힐을 신고 정령은 앞에 섰음에도 여전히 머리 하나는 작았다.

정령은은 말이 없었지만, 차소아는 체면도 없이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울음소리에 지나가던 행인들이 모두 그들이 서 있는 곳으로 시선을 던지자, 정령은은 골치가 아픈 듯 미간을 문질렀다.

“자리 옮겨서 얘기하죠.”

차소아는 그녀를 해성시의 다른 바로 데려갔다. 테이블 가득 술을 시키더니, 체면도 없이 바닥에 주저앉아 고개를 숙인 채 술을 퍼마셨다.

마시면서도 계속 눈물을 뚝뚝 흘렸다.

심지어 정령은에게 술을 따라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녀는 얼굴이 새빨개질 정도로 취해 목이 멘 소리로 말했다.

“나 그 사람이랑 5년이나 사귀었어요. 재벌가 외아들인데, 그 사람 부모님은 전부 날 마음에 안 들어 했어요. 내가 자기네 아들한테 어울리지 않는다고… 난 정말, 정말 그 사람을 좋아해서 억울한 일이 있어도 말 안 했어요. 그러면 그 사람이 날 사랑하게 될 줄 알았는데, 근데 바람을 피우다니!”

말을 마친 차소아는 고개를 젖혀 또 한 잔을 비웠다.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했다.

정령은의 손에 들린 술잔은 이미 비어 있었다. 복잡한 생각에 잠겨 있던 그녀는 무심코 물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차소아가 술 트림을 했다.

“더 이상 구질구질하게 매달려서 되돌리려고 안 할 거예요. 집에 가서 가업이나 물려받을래요! 그 사람이 감히 넘보지도 못할 재벌이 될 거라고요!”

“정 선생님, 제가 몰래 알려주는 건데요, 우리 아빠 경시에 집이 엄청 많고요, 통장 잔고에 0이 엄청 많아요!”

정령은은 할 말이 없었다.

비록 그녀와 차소아는 비슷한 경험을 했지만, 이 점에 있어서는 전혀 공감할 수 없었다.

상대방은 실연당해도 물려받을 가업이라도 있지만, 자신은?

이혼하면 빚더미에 앉은 낡아빠진 도관을 물려받아야 할 뿐이었다.

정령은은 무표정하게 술 몇 잔을 연거푸 들이켰다. 현실은 이토록 잔혹했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격차는 바로 이런 데서 드러났다.

두 사람은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차소아는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취해 제대로 서지도 못했고, 울다 지쳐 이미 잠들어 버렸다.

정령은은 그나마 괜찮았다. 머리가 약간 어지러운 것 외에는 다른 불편함은 없었다.

그녀는 체면도 없이 바닥에 누워 쿨쿨 자고 있는 차소아를 보며 한동안 말이 없다가, 결국 자비를 베풀어 그녀를 데리고 호텔로 갔다.

호텔에 도착해, 잠에서 깨어나 소란을 피우며 술주정을 하는 여자를 보며 정령은은 내일 차소아에게 추가 요금을 청구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새벽 여섯 시까지 계속 시달렸다.

정령은은 잠깐 눈만 붙였다 일어나서 구청에 이혼하러 갈 준비를 하려 했다. 하지만 눈을 감은 지 몇 분도 채 되지 않아, 휴대폰이 미친 듯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발신자 표시는 ‘주윤우’였다.

오늘 밤 진심이 짓밟힌 후, 지금의 정령은은 마음이 완전히 재가 되어버렸다.

그녀는 아무런 감정 없이 옆으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상대방은 따발총처럼 미친 듯이 퍼부으며 따져 물었다.

“정령은, 이준호 팔이 부러졌어. 네가 한 짓이지? 연우는 집에 오자마자 몸이 안 좋다고 하더니, 지금 고열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어.”

“정령은, 넌 어쩜 그렇게 악독하냐.”

한마디 한마디가 날카로운 칼날처럼 정령은의 몸을 베는 듯했다. 그녀는 나지막이 웃음을 터뜨렸다.

실컷 웃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주윤우, 가끔은 네가 나한테 무슨 흑마술이라도 건 게 아닌가 싶어.”

“그래서 내가 7년 동안이나 너한테 미친 짓을 했나 봐.”

“나한테 그런 대단한 능력이 있었으면 차라리 그놈들을 죽여서 화를 풀지 않았을까? 그놈들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는 왜 안 물어봐?”

정령은의 비웃음 섞인 차가운 목소리에 주윤우는 속이 불편해졌다.

다음 순간, 정령은이 다시 말했다. “아침 여덟 시, 구청에서 이혼하는 거 잊지 마.”

‘뚜- 뚜-’ 하고 끊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남자의 얼굴은 어둡고 침울하게 가라앉았다.

정령은이 먼저 그의 전화를 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주윤우는 밤새 잠 못 이루고 초조해하다가, 정연우의 침대 곁을 지키다 시간이 되어서야 자리를 떴다.

오늘은 햇살이 눈부신 날이었다.

정령은은 제시간에 구청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빼어나게 아름다운 외모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돌려 쳐다봤지만, 그녀는 못 본 척했다.

5분 후.

검은색 마이바흐 한 대가 구청 앞에 부드럽게 멈춰 섰다.

주윤우가 차에서 내렸다. 몸에 꼭 맞는 고급 맞춤 정장을 입은 그는 키가 크고 이목구비가 차가웠다.

그는 한눈에 사람들 속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정령은을 발견했다.

두 사람은 말없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구청으로 들어가 이혼 줄에 섰다.

곧 그들의 차례가 다가올 무렵, 남자가 갑자기 말했다. “정령은, 확실히 생각한 거야? 처음 나한테 결혼하자고 조른 것도 너고, 이제 와서 이혼하자는 것도 너야. 결혼을 장난으로 알아? 사람 갖고 노는 게 네 수법이야?”

주윤우의 눈빛은 깊었고, 불쾌한 질책이 담겨 있었다.

당시 그와 정연우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로, 곧 결실을 볼 참이었는데 정령은이 끼어들어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했다.

할아버님께서 죽음으로 협박하며 정령은과 결혼하라고 강요하셨고, 결국 그는 타협했다.

“주윤우, 나도 피해자일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 네 소중한 연우한테 가서 물어보지 그래? 됐어, 이제 와서 이런 말 해봤자 의미 없지. 변호사 시켜서 작성하던 이혼 합의서는 그만둬도 돼. 오늘 바로 이혼 서류 받을 수 있는데, 그런 거 이제 의미 없잖아.”

정령은이 말을 마치자마자 딱 그들 차례가 되었다.

직원이 두 사람의 신분증을 확인하고는 관례적으로 물었다. “두 분 다 결정하신 건가요? 도장 찍으면 바로 이혼 효력이 발생합니다.”

정령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윤우는 잘생긴 얼굴을 굳힌 채 정령은을 바라보다가, 결국 그도 고개를 끄덕였다.

손이 내려오고, 도장이 찍혔다.

오늘은 정령은의 스물두 번째 생일이자, 그녀와 주윤우의 이혼 기념일이었다.

손에 들린 이혼 서류를 보자, 마음속에는 시큰함보다 후련함이 더 크게 밀려왔다.

두 사람이 구청을 나서자, 정령은이 갑자기 몸을 돌려 주윤우에게 말했다. “이제 자유예요, 주윤우 씨.”

그녀의 7년간의 짝사랑은 이로써 막을 내렸다.

이제부터 주윤우와는 남남이었다.

주윤우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눈으로 정령은과 시선을 마주했다. 그 순간, 그는 알 수 없는 답답함을 느꼈다.

여자는 이미 계단 아래로 내려가 있었다. 그러다 무언가 생각난 듯 다시 돌아봤다.

주윤우는 정령은이 후회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뜻밖에도 그녀는 그를 빤히 쳐다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그래도 부부였던 정으로 하는 말인데, 오늘 집에 갈 때 부흥 고가도로는 피해서 가요. 혈광지재를 면할 수 있을 테니.”

주윤우는 어이가 없었다. “…?”

이건 또 사람의 관심을 끌려는 새로운 수법인가?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두 눈은 얼음장처럼 차갑고 날카로웠다.

“정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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